김현식 죽음 결정적인 사망원인 나이 키 인스타
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을 완벽히 부활시켜 화제를 모았던 첫회에 이어 16일 두번째 시간에선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었던 '가객' 김현식을 선택해 그를 기억하는 음악팬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하며 그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이날은 가수 고 김현식의 마지막 육성 녹음본이 전해졌습니다. 2020년 12월 23일 방송된 Mnet ‘AK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에서는 김현식의 모습이 재조명됐습니다. 이날 하하는 고 김현식의 4집 앨범부터 마지막 앨범까지 프로듀싱을 맡았던 송홍섭 프로듀서를 만났습니다.
송홍섭은 고 김현식 투병 당시를 떠올리며 “제가 대충 녹음하기 위한 긴 일정을 잡고 오고 싶을 때 와서 녹음하라고 했습니다. 근데 술병을 들고와서 방해하고 안 하고 그랬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그래서 한번은 저한테 맞았습니다. 마음이 안 좋아서 집에 전화해서 아내에게 대신 사과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 날 현식 씨가 ‘내 볼 왜 이러지?’ 그러더라. 피식 웃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하하는 마지막 고 김현식이 녹음실에서 노래를 부른 마지막 육성 녹음본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현식은 투병으로 힘이 든 듯 절규에 가까운 노래를 토해내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한편 김현식은 1958년생으로 대한민국의 가수.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한민국 가요역사에 손에 꼽는 레전드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고등학교시절 계속 방황하다가 기타를 메고 종로에 있는 한 음악 다방에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명동의 큰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바로 이 당시에 사촌형 양국정의 소개로 종로에서 당시 인기를 끌던 음악다방에서 일하던 한 DJ를 찾아가 그의 앞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DJ는 바로 당시 20대 중순이던 개그맨 전유성이었습니다. 전유성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면서 어린 김현식이 부른 노래에 감탄하며 "넌 음악다방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아까워. 그야말로 가수로 나가면 전설이 될 거다!"라며 적극적으로 가수가 되길 권유하며 가수로서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면서 1984년 발매한 2집인 <사랑했어요>가 대박을 거두면서 가수로 자리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후 동아기획 에서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제작한 3집 <비처럼 음악처럼>도 30만장이 넘게 팔렸으며 상업적 성공과 호평을 받았건만 그 자신은 술과 담배 그리고 1987년 전인권, 허성욱등과 함께 다시 대마초를 피우다가 구속되며 피폐해져갔습니다.
그리고 평소 그는 술은 엄청나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4집을 낼 당시 친구이던 이문세나 함춘호 같은 지인들은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왜 술을 먹냐?"고 걱정했음에도 그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술을 들이켜 댔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은 점차 피폐해져 갔습니다. 1989년 영화앨범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녹음할 때부터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90년 5집 앨범을 발표할 당시 의사가 '술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죽는다'고 경고할 정도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기전 김현식은 자신의 집에서 술과 담배로 오랜시간을 밥도 먹지 않고 지냈습니다. 마지막 6집 앨범을 낼 때에는 그를 이전부터 아끼던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을 만나서 "언젠가 술 먹다가 죽고자 했는데요..."라는 식의 말을 할 정도였고 후에는 간경변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입원한 동부이촌동 금강병원에서도 자주 탈출을 하여 술을 마셨으며 자기 몸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에겐 언제나 기타가 들려 있었고 병실에서도 항상 노래소리가 끊임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1990년 11월 1일(공교롭게도 김현식이 그렇게나 아끼던 후배 유재하의 기일입니다.)에 자신의 자택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간경화로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누나가 임종을 지켰입니다. 동아기획 김영 사장은 전날 각혈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가 세상을 그리 빨리 뜰 줄은 몰랐으며 당일 불과 2시간 전에 김현식이 전화로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에 들어가야겠어요."라면서 밝게 얘기해서 전혀 짐작도 못했다고.
다음 날 그의 누나에게 '갔어요' 한 마디로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합니다. 이때 김현식은 겨우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였습니다. 2010년 김현식 20주기 기념 다큐멘터리에 나온 김영 사장이 회상하길, 전화를 받고 믿기지 않아서 "그럴 리가 없어! 겨우 두 시간 전에 현식이가 밝게 전화하면서 내일이라도 녹음 들어간다고 했다고! 그런데? 현식이가 죽었단 말입니까?!" 라면서 소리쳤을 정도로 충격받았다고 합니다.
사후 그는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안장됩니다. 유작인 '내 사랑 내 곁에'를 제외한 실질적 유작인 5집 앨범 '넋두리' 앨범이 바로 이때 병원에서 외출을 다녀오다시피 해서 간신히 만들어진 것입니다. 김영 사장의 포기하자는 말에도 각혈을 하면서까지 엄청난 유작을 남기고 우리곁을 떠나갔습니다.
출생
1958년 2월 18일
서울특별시 중구
사망
1990년 11월 1일 (향년 32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 자택[2]
원적
충청남도 홍성군
신체 키
171cm, 71kg, A형
가족
어머니 류진희, 누나 김혜령, 사촌 양국정, 남동생 김현수
자녀
아들 김완제
학력
서울수유초등학교 (졸업)
보성중학교 (졸업)
명지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소속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별명
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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